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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시] 그림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시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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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중섭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과 시 나희덕의 섶섬이 보이는 방

 

오늘은 그림 한 편과 시 한 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림은 작가 이중섭의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이며 시는 나희덕 시인의 '섶섬이 보이는 방'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는 이중섭 작가의 시 '소의 말'을 두 편의 그림과 함께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나희덕 시인의 시집<야생사과> 속에, '섶섬이 보이는 방'이 있어 함께 담아봤습니다.

먼저 그림을 감상하시고, 천천히 나희덕 시인의 시 '섶섬이 보이는 방'도 함께 감상해보세요.^^

 

 

 

그림 이중섭의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1951년 나무판에 유채, 41x71cm

 

 

 

시 나희덕의 섶섬이 보이는 방.

 

 

섶섬이 보이는 방

(이중섭 방에 와서)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질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질을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 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00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질에 세 든 소라게처럼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아고리는 작가 이중섭, 발가락군은 아내의 애칭입니다. 아고리는 턱이 긴 이중섭의 별명이었습니다. 턱을 뜻하는 일본어 '아고'에다 성을 붙여 '아고리'라고 불렀습니다.

 

 

(시 중간에 "게가 아이의 00를 물고"..부분은

포스팅 금지어라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고추잠자리라 이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중섭 작가는 1973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했습니다. 재학 중 독립전과 자유전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 각광을 받고,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합니다.

 

 

이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하여 2남을 둡니다.

이중섭 작가의 생애는 이전 포스팅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은 1951년 제주도에 머물면서 그린 그림입니다.

나희덕 시인은 작가가 기거했던 집, 방을 방문하고 이중섭 작가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가득했던 일생이 담긴 그림처럼, 시 '섶섬이 보이는 방'을 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속에 담긴 아들 태현, 태성군에게 쓴 편지를 담아보겠습니다.

 

 

태현, 태성

 

잘 있었니?

아빠는 오늘 종이가 떨어져서 한 장만 써서 보낸다. 태현이와 태성이 둘이서 함께 보아라. 이다음에는 재미있는 그림을 한 장씩 그려서 편지와 함께 보내주겠다.

태현이

태성이

둘이서 사이좋게 기다려다오. 아빠가 가면 자전거 사줄게.

 

아빠 중섭.

 

 

이상 그림 이중섭의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과 시 나희덕의 '섶섬이 보이는 방'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이중섭의 그림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서귀포의 환상' 시 '소의 말'

 

[그림] 이중섭의 그림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서귀포의 환상' 시 '소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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