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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개념 어휘/옥타비아누스 생애.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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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옥타비아누스의 생애와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생애와 함께 업적을 살펴보고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특징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옥타비아누스 생애 업적

옥타비아누스(BC63-AD14)는 안토니우스(BC82?-BC30)와 함께 2차 삼두정치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로마 제국 최초의 황제이자 가장 위대한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를 말합니다. 그는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14년까지 로마를 통치했으며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의 탄생도 그의 통치 시대에 있던 일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질서와 번영을 위해 권력을 사정없이 휘둘렀는데, 그의 통치를 소위 로마의 평화를 의미하는 '팍스 로마나'라고 부릅니다. 이 팍스 로마나에서 오늘날 군사력에 기초한 미국의 국제질서 확립을 일컫는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태어났을 때는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였다가, 후에 시저(로마공화정 말기의 정치가,BC 100-BC44)의 양자로 입양되어 '시저 옥타비아누스'라고 불렸습니다. 시저가 암살된 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 장군과 더불어 권력의 연대를 형성했는데, 이것은 흔히 말하는 '2차 삼두 정치'를 말합니다. 그들은 수년간 함께 적들을 제거해 나갔습니다. 그 후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연대해서 정치적 세력을 이루었는데,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악티움 전쟁(BC31)에서 무찌르고 로마의 절대 강자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27년 그의 양자 이름인 '시저'에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뜻으로 BC27년에 원로원으로부터 칭호를 받았음)라는 이름이 더해져서 '시저 아우구스투스', 즉 흔히 말하는 아우구스투스 대제가 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키는 좀 작았지만 훌륭한 균형미와 맑고 밝게 빛나는 눈, 탁월한 미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고 동시에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격은 온화하고 치밀해 로마 제국의 모든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먼저 그는 로마의 영토를 확장하고 국경에 수비대를 배치하며 보병의 규모를 줄이면서 해군에 함대를 만들었습니다. 공공의 삶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서 수로를 정비하고 공공건물, 특히 많은 사원을 건립했으며 극장도 지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헌신과 로마의 오랜 전통을 다시 복원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시민들의 도덕성 함양을 위해 간음을 불법으로 정하고 결혼과 출산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누가복음>에서 알려진 인구조사를 하여 로마의 세제를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을 크게 장려하여 그의 통치 시대는 로마 문학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던 옥타비아누스는 서기 14년에 생을 마쳤습니다.

 

 

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3세기 정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발전해 기원전 2세기에 걸쳐 로마 및 소아시아 지역에서 성행했던 철학 및 정치사상입니다. '스토아(stoa)'는 고대 그리스의 공공건축으로서 앞은 기둥으로, 뒤는 벽으로 둘러싼 형태를 말합니다. 제논이 스토아에서 주로 가르친 데서 '스토아학파'라는 말이 유래했습니다. 스토아철학은 그리스 도시국가를 넘어서 지중해 지역으로 확산된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사상입니다. 그리스에서 시작한 이 스토아철학은 파나이티오스에 의해서 로마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키케로는 파나이티오스의 책을 재조명하여 스토아사상에 따라서 <의무론>을 저술했으며, 그 외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와 로마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유명한 스토아학자에 속합니다.

 

 

 

스토아 사상은 논리와 윤리, 물리적 세계인 자연을 하나로 결합합니다. 소크라테스적인 윤리적 덕성과 헤라클레이토스의 우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스토아 사상에 결합된 것입니다. 스토아 사상에서 논리, 물리적 자연 그리고 윤리학은 가장 중요한 3요소입니다. 스토아 사상은 자연을 유기적 통일체로 인식하며 신까지 포함합니다. 이 모든 것은 물질에 근거한 유물론적이고 일원론적이며 결정론적입니다. 물질의 생성과 회귀 및 그 과정의 반복은 하나의 질서로 정해진 과정이며 이것을 흔히 '섭리'나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스토아 철학은 경험적입니다. 논리와 진리, 삶과 윤리, 운명과 자연이 스토아 사상에서 연합됩니다. 진리는 오류와 구별되며 지식은 이성에 의해서 얻어집니다. 진리를 구별하고 지식을 얻어서 삶에 바르게 적용하는 것이 윤리이며 지혜입니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의 지혜는 자연을 바르게 관찰하고 정확한 지식을 얻어서, 운명을 바르게 이해하고 운명에 따라 자연 질서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원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토아의 지혜는 관조적인 지혜가 아니라 실천적입니다. 이러한 실천적 지혜가 종교와 예술보다는 정치와 법률에서 두각을 나타낸 로마의 윤리적 정신에 잘 부응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스토아 사상은 금욕적이어서 감정의 쾌락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 점에서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던 에피쿠로스학파와 날카롭게 대립합니다. 스토아학파가 가르치는 지혜의 삶은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기에 숙명론적입니다. 왜냐하면 전 우주는 운명이라는 질서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스토아 사상은 이성을 최고 목적으로 삼고 의무를 강조합니다. 이성은 자연의 정신이며 우주의 혼이며 자연에 내재하는 신입니다. 그러므로 이성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이야 말로 필연적으로 지혜가 됩니다. 

 

 

 

엄숙하고 고요한 정신에 머물면서 고상한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며, 운명이 인도해주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서 절제와 인내로써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스토아 사상이 추구하는 참된 지혜의 삶입니다. 스토아학파가 미친 영향은 역사에서 적지 않습니다. 플로티노스의 철학은 플라톤을 스토아 방식으로 정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스토아 철학의 윤리적 명제들은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 신과 자연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점은 스피노자나 브루노의 철학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선과 삶의 목적으로 여기는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으로서 에피쿠로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주창되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형이상학은 데모크리토스의 발자취를 따라서 유물론의 원자론에 기초했으며, 윤리학적 기본 개념은 평온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와 육체와 정신의 고통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쾌락이 최고의 도덕적 선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에피쿠로스학파를 쾌락주의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쾌락주의라는 말때문에 오히려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에피쿠로스는 감각적인 쾌락을 물리치고 영혼의 평화나 우정에서 삶의 즐거움을 얻고 고통을 일으키는 공적인 삶을 피해서 한적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칩니다.

 

 

 

에피쿠로스와 그의 제자들은 대체로 정치를 기피했습니다. 에피쿠로스 자신의 저서는 별로 남아 있지 않고 제자나 계승자 들에 의한 이론의 변천도 거의 없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루크레티우스가 에피쿠로스학파에서 유명한 사람으로 눈에 띕니다.

 

 

 

에피쿠로스 사상은 스토아 사상처럼 헬레니즘 시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로마 제국시대에까지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콘슨탄티누스 대제 이후 기독교가 대세로 되면서 에피쿠로스 사상은 억압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가르침과 양립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적 유물론에 따르면 신은 단지 물질적 존재일 뿐이며 인간사에 벼로 상관이 없고 만물을 창조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테의 작품에서는 에피쿠로스학파에 속한 자들이 쾌락주의자로 지옥의 불에서 고통받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사상에서 신들은 종교적인 기능은 갖지 못합니다. 신이나 영혼도 다른 물질과 마찬가지로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사와는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신들은 영혼을 가진다는 점에서 인간과 같지만 인간 영혼의 육체에 대한 결속력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이론적으로 불멸의 존재로서 신들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물질적 존재이며 실제적 삶에 있어서 전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이신론과 유사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관심은 사람의 일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쾌락을 얻어내고 가능한 한 고통을 겪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제되고 온건하며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만족시키기 어려운 욕심을 갖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두려움, 즉 대표적인 두 가지 두려움인 신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혼도 평정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 에피쿠로스는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에피쿠로스 사상은 중세를 지나는 동안 어둠 속에서 묻혀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오면서 원자론은 과학자들에 의해서, 쾌락설은 유물론자들에 의해서 다시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상 옥타비아누스의 생애와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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