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에 부치는 글, 이규보
푸른 대나무로 둥근 부채를 만들고 거기에 얼음 같은 비단으로 단장했으니 서늘한 바람이 스스로 불어온다. 삼계(三界)가 뜨겁기는 마치 그릇 굽는 가마 속 같으니, 바라건대 이 부채를 가지고 흔들고 부채질하여 그 맑은 바람으로 그대들의 타는 것을 식혀서 구하라.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로 중생이 사는 곳을 합해서 말하는 불교 용어) 글 출처 - 범우사
단오가 지나니 하루하루 다르게 해가 길어지고 기온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람 솔~솔~ 부는 부채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몇 해 전부터 휴대용 손 선풍기가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이마저도 번거로워 목에 두르는 선풍기가 등장했습니다.
얼마나 시원하겠나 싶어 쳐다도 안 봤는데요. 한번 사용해보니 그야말로 신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 부채가 더 예쁩니다.^^
부채는 '부치는 채' 라는 말이 줄어서 생긴 말입니다. 한자어로는 '선자'라고 하는데요. 고려 및 조선시대에도 부채로 불리었습니다. 우리나라 문헌, 삼국사기에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공작선과 대화살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서 고려초에 이미 부채가 있었으며, 견훤이 하례품으로 주었던 공작선이 둥근 부채(방구부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채의 종류
방구부채 : 부챗살에 깁이나 비단 또는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형의 부채(=둥근 부채, 단선, 원선)
접 부 채 :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부채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접선, 접첩선)
별 선 : 보통 부채보다 특별히 잘만든 부채, 부드러운 솔가지를 엮어 만든 것
낭 선 : 혼인 때 신랑이 신부집에 말을 타고 갈 때 소지하여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
포 선 : 양반들이 상중에 근신하며 남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 용도로 사용(=상선, 복선)
부채의 종류와 명칭은 부챗살의 모양과 부채 바탕의 꾸밈에 따라 달라졌으며, 접부채의 경우 부챗살의 수와 부채 꼭지의 모양과 부속품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접부채 중에는 부챗살이 30살, 40살, 50살 되는 것도 있습니다.
별선은 지금은 전혀 볼 수 없고 문헌상에서만 보이는데요. 수요자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일종의 커스텀ㅎㅎ)
우리나라 풍속과 부채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 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단오가 되면 다가올 여름 채비를 위해 친지와 웃어른께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 말기까지는 해마다 단오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였는데요. 이때 임금은 진상된 단오 부채를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관습으로 이어지다 고종 때 백성들의 기근을 생각하며 단오 진상을 정지했습니다.
민간에서는 부채에다 금강산의 만물상이나 버들가지, 복숭아꽃, 나비, 벌, 백로, 부용 등을 그렸으며, 유명한 이의 시문을 써서 가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부채에 이름 있는 화가들의 그림을 그려 받거나 명필가의 글씨를 써서 가지기도 했는데요.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니면 잘 그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때 부채에 그려진 그림과 글씨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부챗살의 선지만 따로 떼어 액자나 족자로 표구하여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하나의 미술품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당연히 부채가 여자들의 장신구로도 사용되었거니 했는데요. 무당이나 기생만 사용했으며 부녀자의 사용을 금했습니다. 이는 조선 태종 때 부녀자의 부채휴대외출을 금한 데서 비롯되었다며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혼례 때 얼굴 눈 아래 하반부를 가리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었는데요. 신랑은 청색, 신부는 홍색을 사용하였으며
상중에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부채를 사용했습니다.
부채 제조 방법
부채를 만들려면 먼저 대를 골라야 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대는 음력 7월 15일 전후의 1달 동안과 9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베어낸 대만 사용합니다. 이 시기의 대를 사용해야 벌레가 슬지 않고 질이 좋은 부채가 만들어집니다.
잘 말린 대를 끊어서 숯불에 구어 진을 빼 대빛을 곱게 한 후, 대껍질만 남겨놓고 깎아 풀로 붙여 합죽을 합니다.
부채가 완성되기까지 약 3개월 이상의 시일이 걸리며, 이마저도 분업을 하여 만든다고 하니 정성 가득한 귀한 물건이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부채에 장식도 했는데요. 이를 선추라고 했습니다. 즉 선추는 부채고리에 다는 장식품입니다.
선추는 주로 양반들이 사용하였는데, 이것도 벼슬아치만 달 수 있었습니다. 선추로는 주로 호박 또는 비취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나무, 뿔, 또는 금속물도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단오진상의 접부채에는 선추로 금. 은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는데요. 당시 선추를 단 부채 한 자루 가격이 목면 400필에 달하는 가격이었으니 대단한 사치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사동에 가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한지 부채를 파는데요. 이것을 사서 어린 조카들에게 선물을 해줬더니 멋지게 그림을 그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더라구요.(외국분들 선물용으로도 추천합니다.^^) 일찍이 단오 부채의 유래를 알아 웃어른들께 전해드렸는데요. 언제부턴가 이마저도 안 하고 있었네요. 오늘 포스팅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니 더 더워지기 전에 고운 부채들을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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