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연필과 지우개는
수많은 학용품 가운데 필수품이었는데요
저는 연필과 지우개를 끝까지 써 본 기억이 없습니다.
몽당연필이 되면 쓰기 불편하다고 사용을 멈추고,
지우개는 작아지기 전에 잃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학생이 손에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는데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장난하는 줄 알고 오해를 했었는데요
알고 보니 손바닥 보다 작은 몽당연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몽당연필을 꼭 쥐고
글을 쓰는 학생도 예뻐 보이고
몽당연필도 귀여웠어요.
세상에 그런데
연필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우개도 마치 공깃돌처럼
동글동글 얼마나 귀엽던지요.
저도 모르게 "나 줘!" 했습니다.ㅋㅋㅋ
귀한 물건에 상응하는 대가로
(절대 대가가 될 수 없지만)
든든한 간식을 사주었습니다.
평소에 털털하기도 하고
주먹도 나보다 더 큰 남학생인데
몽당연필과 지우개를 계기로
학생을 바라보는 저의 눈빛이 달라졌지요.ㅎㅎ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고개를 돌려 집을 한번 훑어보고 있습니다.
10년 썼으면 오래 썼다고
안 보이는 곳에 부식이 있을 거라며
직원분께 교체 권유를 받았던 커튼,
9년을 사용한 소파 테이블,
장롱 안에 깊이 숨겨 둔 물건들을 제외하곤
제 각각 나이를 살펴보니
몇 차례 이사를 따라다닌 침대가
가장 오래된 물건입니다.
몽당연필을 선물해 준 학생에게
그때는 물어보지 못했는데요
이제 와서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작아질 때까지 썼어?"
"몽당연필이 좋아?"
벌써 몇 해 전이니
지금은 물을 수도 없지만
어른이 된 그 남학생은
왜인지 지금도 맨질맨질 윤이 나는
물건들을 여럿 지니고 있을 것 같아요^^
이사할 때 정말 불필요한 물건들은
가차 없이 버렸는데요
몽당연필과 지우개는 마치 보석처럼
종이 상자에 담아 잘 데리고 있습니다.
비록 키는 작아졌지만
오히려 장엄한 몽당연필과 같은 사람들이
제 주위에 있어
감사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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