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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황포돛배의 유래와 낙동강 황포돛배의 마지막 장인 김창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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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황포돛배의 유래와 낙동강 황포돛배를 만드시는 마지막 장인 김창명 님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해양수산부 홈페이지 참고)

 

 

황포돛배의 기록 사진,출처-해양수산부 홈페이지

 

 

 

- 황포돛배의 유래

 

한국의 돛배는 대부분 황포돛배라고 부릅니다.

이는 돛의 색이 누렇기 때문에 '황포'라는 명칭이 붙었는데요.

예로부터 한강 이북을 드나들며 식량과 땔감, 소금 등을 수송하는데 쓰였습니다.

돛대를 세우고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하여

주로 강을 거슬러 먼 거리를 다니며 화물을 운반하는데 활용되었던 돛단배입니다.

 

그리고 이런 한선(韓船,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강이나 바다에 떠다니던 배)인 거룻배, 나룻배, 야거리배, 당두리 등을 만드는 장인을 조선장(造船匠,우리의 전통 배인 한선을 만드는 장인)이라고 합니다.

조선배의 특징은 물 깊이가 얕아 무릎 정도밖에 안 되는 강의 상류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배의 바닥이 편편하고 탄력있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배를 만들 때는 주로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함께 일하며,

큰 배는 2-3명, 작은 배는 1-2명이 배의 종류에 따라 일주일에서 한 달이 걸려 제작을 했습니다.

 

 

 

- 낙동강 황포돛배의 마지막 장인 김창명님

 

과거에는 수운과 해운을 연결하는 낙동강 하구 '하단포'에도 황포돛배가 떠다니며

부산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자를 실어 날랐는데요.

근대화가 되면서 이런 황포돛배의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지역을 대표하던 조선장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60여 년 동안 4대째 황포돛배 조선업 가업을 잇고 계시는 김창명 장인입니다.

 

김창명 장인과 직접 제작한 황포돛배,출처-해양수산부 홈페이지

 

 

김창명 장인의 황포돛배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낙동강 뱃길을 따라

물자 교류와 어업활동에 필요한 크고 작은 치수의 돛배를 제작했고.

뒤를 이어 할아버지, 아버지가 기술을 전수받아 배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가풍에 김창명 장인은 어릴 때부터 배 만드는 기술을 보고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공부하는 것보다 *배 모으는 게 신기해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조선소로 달려가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선 기술을 익혀 23살 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김창명 장인은 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으는 것'이라 표현합니다.)

 

 

 

- 김창명 장인과 아버지

 

김창명 장인은 25살에 아버지께 배운 기술로 만든 첫 배를 띄우셨습니다.

비록 그 당시에 아버지는 장인의 실력에 만족해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인의 실력에 만족하시고 인정을 해주셨습니다.

이에 장인은 아버지가 만족해하는 배를 만들면

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컸습니다.

장인은 아직도 아버지께 물려받은 도구를 보관 중이며

일부는 아직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인의 아버지께 물려받은 제작 도구, 출처-해양수산부 홈페이지

 

 

황포돛배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장인의 할아버지 때부터이고

아버지 때부터 그 명성이 전국으로 퍼졌는데요.

그 당시 전국에 배 만드는 곳 중 '하단선창조선소'가 제일 컸으며,

4대째 배를 만드는 집안은 전국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배를 만들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물어볼 사람이 없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다고 합니다.

 

 

- 김창명 장인의 1천 척 넘게 배를 모아 온(만들어 온) 시간들

 

김창명 장인은 배 만들기는 '여러 가지를 모으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집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배도 모으는 게 옳은 표현이라고 하네요.

특히 배의 선체를 만들 때 공들여 세밀한 작업을 하는데요.

곡선이 곡선답게 바르게 나와야 배의 수명이 오래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힘들게 작업 하나하나 진행해 배 한 척이 완성되는 순간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신대요.^^

지금까지 1천 척 넘게 배를 모으셨어도 여전히 재밌고 즐겁다는 장인입니다.

 

멀리서 배의 *이물만 보아도 본인이 만든 배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물-한자로는 선수(船首)라고도 하며 배의 앞부분을 뜻하는 우리말)

이는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목선의 특성상

배를 만드는 사람에 따라 고유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인의 배는 선수 위의 코가 다른 배들과 달리

돌고래처럼 뾰족해서 날렵 해 보이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장인의 작업 모습1, 출처-해양수산부 홈페이지

 

장인의 작업 모습2,출처-해양수산부

 

 

 

- 사라져 가는 조선장

 

김창명 장인은 2016년에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셨습니다. 

그 후 후계자인 조목근 선생님을 수제자로 등록해

현재 배 만드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조선장은 총 6명이 있지만, 

김창명 장인처럼 기술을 이어갈 후계자가 있는 조선장은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시대가 변해 목선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데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신 분들의 뜻을 함께 하실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합니다.

사라져 가는 우리 것들이 못내 안타까운 현실에

배를 만든다 하지 않고 '배를 모은다' 하셨던 장인의 말씀이

여러 의미로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황포돛대 노래비가 세워진 곳이 있어서 간단하게 안내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황포돛대 노래비, 출처-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황포돛대 노래비 위치 : 경남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 324-5

문의 및 안내 : 055-255-3695

 

 

◈ 황포돛대 

(이용일 작사/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

 

마지막 석양빛을 깃 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 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 바람에

떠나가는 저 사공 고향이 어디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 마라 이 마음도 서럽다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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